작성일
2023.09.19
수정일
2023.09.19
작성자
박지현
조회수
469

[기고] 김해원 교수, 로스쿨에서 ‘선택형 필기시험’과 법학교육


김해원(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시험법」은 필기시험과 별도의 법조윤리시험을 예정하면서 필기시험을 선택형과 논술형으로 구분하고(제8조 제1항), 선택형 필기시험과 논술형 필기시험의 점수를 일정한 비율로 환산하여 합산한 총득점으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할 뿐(제10조 제2항), 시험의 정답을 판정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런데 실제 출제되는 선택형 시험문제들의 대다수에는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이라는 정답판정 기준이 부가되어 있다. 그 결과 ‘법원이 특정 소송사건에 대하여 법을 해석·적용하여 내린 판단·판시의 예(例)’인 판례에 대한 지식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변호사시험은 ‘판례지식’이 아니라, “법률지식 등 법률사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검정하기 위한” 시험이다(「변호사시험법」 제1조).

물론 판례는 중요하다. 민주적 법치국가라는 헌정질서가 유지되는 평화의 시대에는 정치체에서 발생하는 혹은 내재하는 각종 다툼이나 모순들이 첨예화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전쟁이나 사적 폭력에 기대기보다는 법원에서의 다툼으로 수렴되어 해소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판례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중요한 논쟁과 가치투쟁의 지형을 조망하고, 사법적 문제해결 과정과 그 한계를 성찰토록 하는 핵심 계기이다.

하지만 판례 그 자체가 법은 아니다. 오히려 판례는 법을 통해서 평가되어야 할 공권력 행사의 결과물이자 법적 평가의 대상일 따름이다. 예컨대 헌법재판소 결정은, 헌법을 통해 통제되어야 할 헌법재판소라는 국가기관이 행한 공권력 행사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대법원 재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따라서 국가의 사법기관이 생산한 판례에 대한 평가 및 비판을 중심에 두지 않는 판례 공부는, 현실의 갈등과 다툼 및 그 해결을 확인·관찰하기 위한 경험적·사회과학적 연구나 역사적 자료의 축적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현실 속에서 규범 해석학적 설득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본격적 그리고 본질적 의미에서의 법학 공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법학 공부에서 판례는 법을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활용하기 위한 계기와 모범을 보여주는 소재라는 점에서 유용한 것이지,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따르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가 아니라 ‘법’에 따라야 한다는 전제에서, 설득력 확보를 위한 법적 논증 능력을 키우는 데 법학 공부의 핵심이 있다. 그러므로 법학 공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답이나 정답으로 위장한 판례가 아니라, 더 나은 법적 논증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변호사시험법」은 “변호사시험은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시행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그리고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이 ‘판례집 편찬인력 양성’이나 ‘판례 종속적 법조인’의 양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히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은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하면서(제1조)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 양성”을 교육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2조). 따라서 변호사시험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을 노골적으로 내거는 것은 「변호사시험법」의 취지나 정신과도 어울리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을 왜곡하는 구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법학 교육과 변호사시험에서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이라는 기준이 강조·강화될수록, 사법관료에 의한 지배와 사법 보수화가 촉진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또한 위협받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결과물이자 법치주의의 출발점인 법보다도, 법을 말하는 법관의 입을 더 귀하게 여기고 이를 강조·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툼이 있는 경우 판례에 의함’이라는 말로 점철되고 있는 선택형 시험은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판례 추종적·추수적 성격이 강한 논술형 시험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는 ‘변호사시험 자격시험을 위한 표준판례연구 개정판’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가 소위 표준판례의 내용 그 자체의 답습이 아니라, 변호사 자격에 걸맞은 힘(즉, 법에 기대어 해당 판례와 대결할 힘)을 키우기 위한 표준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 http://www.lawschoo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4&fbclid=IwAR25N2wJ-0uac0Mn2Hyu4b8BwTVGwh2Y2Uzy-XLXK-8eq4hyE55cAqJmv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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