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원(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해원(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헌법에 “보상”으로 읽히는 단어는 4번 등장한다. 그런데 헌법 제23조에 두 번 등장하는 보상과 헌법 제28조에 나타난 보상의 ‘보’는 ‘기울 보(補)’이지만, 헌법 제29조에 쓰인 보상의 ‘보’는 ‘갚을 보(報)’이다. 물론 여기서 헌법상 ‘기울 보(補)’를 사용한 보상(補償)과 ‘갚을 보(報)’를 사용한 보상(報償)이 갖는 의미는 달리 파악해야 한다거나,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규범의 취지와 맥락의 공통성에 주목해서 양자의 의미를 다르지 않게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거나 혹은 헌법제정·개정 과정에서 표현을 달리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등을 주장 및 추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표기의 차이는 의미의 차이를 유발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법문의 의미와 이해도 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우리 법을 살피고 이해하는데 한글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음을 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법문에 포착된 명시적 표현을 정확히 살펴 이를 거듭 확인하는 것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소양이자 법학 공부에서 간과할 수 없는 핵심적 활동이다. 왜냐하면 법에 포착된 언어는 민주주의의 성과이자 법치주의의 시작이란 점에서 법문에 대한 존중은 민주적 법치국가에 대한 존중을 담보하며, 명시적인 법조문은 법을 해석하고 적용 및 활용하기 위한 이론과 실천의 공통된 출발점이자 한계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언어는 법을 매개하는 수단이자 헌법 국가의 구성요소이다. 따라서 문서의 형식으로 표현되고 일정한 절차와 형식을 거쳐 공포된 규범을 중심에 두고 있는 성문법 국가에서, 법문으로 포착된 명시적 언어에 대한 정확한 주목과 안내가 소홀해지면 법은 상호이해의 지평을 벗어나서 유대감과 신뢰성을 잃고 멋대로 사용되어 담론공동체로서의 국가를 형성 및 유지하는데 장애가 될 우려가 있다. 예컨대 헌법에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민주(民主)나 공화(共和)에 대한 주목이 경시되면, 이들의 의미와 지위가 술 취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민주(憫酒)나 사적 영역을 거덜 낼 공화(公化)로 각각 조롱·의심·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의 관리·운영 주체인 법무부는 법령상 특별한 근거가 없음에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한 수험생의 편의를 위해서 지금까지 법전을 제공해오고 있다. 이러한 법전 제공은 필요하고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변호사시험은 법문에 대한 암기력을 겨루는 시험이 아니라, 구체적 문제 상황에서 법을 찾아내고 이를 해석·적용·활용하는 사무(법률사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검정하기 위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공되는 법전은 공식화된 것으로서 정확하고 바른 것이어야 한다. 잘못된 혹은 불완전한 정보를 고의로 제공하는 것은 「변호사시험법」에 따른 시험을 방해하는 것일 수 있고, 무엇보다도 법을 정립한 입법권자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1년도 제10회 변호사시험부터 법무부는, 한글과 한문을 혼용하여 제정 및 공포된 현행 헌법과 주요 법률들의 표기를 무시하고 법문의 거의 모든 표기를 한글화해서 제작한 법전(한글 법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제공에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며,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문을 정확히 이해해서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 할 응시자들에게 불명확한 혹은 오해 소지가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라면 변호사로서 지녀야 할 외국어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영문 법전을 공식적으로 제공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설사 (‘한글·한문 혼용’이라는 현행 헌법 및 법률의 명시적 태도를 무시하고) 오직 한글 혹은 영문으로만 법문을 안내하고 이를 공식화하려는 신념과 갈망이 가득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법무부는 헌법과 법률의 법문이 완전 한글 혹은 완전 영문으로 개정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법무부는 입법기관이 아니라 법집행기관일 뿐이며, 무엇보다도 성문헌법은 언어생활에 관한 정치공동체의 기본적 결단 그 자체이며, 이러한 결단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의결하는 법률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률상 제도인 변호사시험에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법전이 (입법자의 선택·결정에 따라 공포된 법문의 언어가 아니라) 법무부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언어에 따라 편집된 법전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 https://www.lawschoo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