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4.03.20
수정일
2024.03.20
작성자
박지현
조회수
113

[기고] 조소영 교수, 백지신탁 제도 왜 시작했나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공법학회장

공직 수행의 공정성 높이자는 취지
과도한 재산권 침해 적실성 상실
근본 정신 살리는 제도적 개선 필요

 

공직자 인사는 물론이고 각종 공직 비리 의혹이 문제가 될 때마다 쟁점이 되곤 했던 공직윤리 문제와 관련한 국민적 관심과 요청 속에서 1981년에 탄생된 법이 공직자윤리법이다. 이후 공직자윤리법은 당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다는 비판이 있어서였건 현실 적응성이나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서였건 2023년 현재까지 50여 차례의 법 개정을 이어 왔다.

그런데 공직자윤리법의 제도 개선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제도 도입이 바로 2005년의 공직자 주식백지신탁제도였다. 이는 고위공직자가 직위 또는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하여 주식거래를 하거나 주가에 영향을 미쳐 부정하게 재산을 증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였다. 그래서 공직자 본인과 그 이해관계자가 3000만 원을 초과하는 직무 관련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결정한 때를 제외하고는, 임명 2개월 이내에 그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백지신탁제도는 도입 당시 공직 수행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높여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바 있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공직자윤리법에서는 주식 보유 등록을 정했을 뿐 그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가 없었지만 백지신탁제도 도입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통제 수단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제도에 대해서는 도입 시부터 대상 공직자의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았다. 실제로 제도 시행 이후 기업인 출신자의 공직 진출에 걸림돌이 된 사례들도 있었다. 그리고 최근엔 인사혁신처의 보유 주식 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하는 쟁송으로 소위 ‘시간끌기소송’이라는 비판적 상황까지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또다시 이 제도를 개선해야 할 때가 아닐까. 공직자 윤리 문제는 공직 제도 전체의 전제적 기초다. 이는 공익과 사익의 이해 충돌을 방지하여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가져야 할 공직자 윤리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공직자윤리법이, 공직자의 기본적 자격으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근본 이유다. 하지만 현실에의 적실성을 잃은 제도는 오히려 옳은 목적도 무의미하게 한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우리 제도에 비해 제도 내용의 유연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대상이 되는 공직자가 직무에 관하여 이해 충돌이 있는 경우에도 매각이나 백지신탁 외에도 이해 충돌 해소를 위해 직무 회피, 전보 등 다른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이해 충돌 우려 해소를 위해 백지신탁만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해 충돌 우려 해소의 충실한 이행 그 자체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둘째, 미국의 백지신탁제도는 수탁자가 신탁 재산의 관리 및 운용에 폭넓은 재량을 가지며 우리 경우처럼 일정 기한 내에 재산을 전부 처분할 의무를 두지 않고 있다. 셋째, 미국의 백지신탁제도는 적용 대상 재산 범위에 제한이 없어서 주식 외에도 가상 자산, 부동산 등도 백지신탁의 대상이 된다.

현행 백지신탁제도의 개선에 대해 적용 공직자 범위의 확대나 회피나 불복 시의 엄격한 제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공직자윤리법의 옳은 목적을 적실성 있게 실현할 수 있기 위한 현실적이고 유연한 제도 개선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백지신탁제도는 공직 취임의 진입 장벽 기능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고, 공직자가 국민의 수임자로서 직무전념의무를 다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행 백지신탁제도는 공직자 재산의 일률적 매각만을 규정함으로써 공직자의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처럼 백지신탁 외에 공직자가 이해 충돌 해소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안들로 직무 회피나 전보 등의 방안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공직자 재산과 관련한 이해 충돌 우려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적용 대상 재산의 유형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주식 외에도 가상 자산이나 부동산 등 재산적 가치가 있는 다양한 유형들로 대상 범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가상 자산은 2023년 6월 등록 대상 재산에 추가된 바 있는데도, 여전히 이해 충돌 해소의 대상을 주식으로만 규정한 것은 시대에 뒤쳐진 입법 내용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식 보유액도 현재의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제도 도입 당시의 3000만 원이라는 기준 액수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제도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 디자인으로 거듭 나기를 바란다.


*출처: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311141800349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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