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4.11.21
수정일
2024.11.21
작성자
박지현
조회수
352

[기고] 김해원 교수, 법학전문대학원과 합격 현수막

[로스쿨에서] 법학전문대학원과 합격 현수막

김해원(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前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 前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필자가 근무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의 중앙현관 앞에 최근 두 개의 큰 현수막이 걸렸다. 하나는 “축하합니다! 2025년 검사 임용 재학생 7명 합격(전국 로스쿨 3위, 국립대 로스쿨 1위)”을, 다른 하나는 “축하합니다! 2025년 재판연구원 재학생 응시자 10명 합격”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해당 현수막을 통한 축하의 대상은 합격한 사람이 아니라, 합격한 사람의 숫자인 것 같다. 합격자의 성도 이름도 없이, 그저 ‘7명’, ‘10명’과 같은 합격자 수만 적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현수막은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한 것을 좋은 일로 여겨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응시자에게 전하려는 인사로서의 축하가 본질이 아니라, 합격자 수에 기대어 자위하거나 뽐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자랑합니다!”라고 적고 싶었으나, 겸손이 힘들지 않아서 “축하합니다!”라고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10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육 현장에서 행해진 특정 학교 합격 현수막 게시 관행’과 관련해서, “특정 학교 중심의 진학 홍보는 이른바 ‘명문학교’ 진학을 출신학교의 자랑으로 인식하여 널리 홍보하는 우리사회의 오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는 “학벌주의를 부추기고 차별적인 문화를 조성”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도록(「교육기본법」 제2조) 역할을 해야 하는 학교 현장에서 특정 학교 합격 홍보물을 게시하여 이에 속하지 않은 학생에게 소외감을 주는 것”이어서 “교육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해당 관행 개선을 위한 의견표명을 결정한 바 있다.

고등학교의 존재 이유가 특정 대학을 위해 학생을 공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법학전문대학원의 존재 이유 또한 특정 법조 직렬 혹은 특정 법률 사무에 종사할 사람을 공급하는 데 있지 않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우수한 법조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기관으로서(제1조) 법조인(법률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의 양성에 필요한 “전문적인 법률이론 및 실무에 관한 교육 및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곳이며(제4조),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다(제2조).

따라서 법학전문대학원이 졸업생들을 추적하면서 ‘풍부한 교양을 갖춘 법조인 김아무개 배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심이 있는 법조인 이아무개 배출’,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가진 법조인 박아무개 배출’, ‘건전한 직업윤리관을 가진 법조인 정아무개 배출’,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갖춘 법조인 최아무개 배출’ 등과 같은 현수막으로 해당자를 축하하거나 자축 혹은 자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 임용 OO명 합격’이나 ‘재판연구원 응시자 OO명 합격’ 혹은 ‘변호사시험 OO명 합격’ 등과 같은 합격 현수막을 노골적으로 내걸며 다른 법학전문대학원들과 숫자 경쟁하는 것이, 과연 법학전문대학원의 목적과 교육이념에 부합하는 행위인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법학전문대학원의 합격 현수막들은 이미 ① 많은 다른 학생들을 소외시키면서까지 검사나 재판연구원을 희망하는 자를 중심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의 자원이 배분되도록 유도하고, ②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함으로써 시험이 아닌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고자 한 입법자의 의지에 흠집을 내면서까지) 각종 시험에 법학 교육을 종속시키는 경향을 옹호하는 나팔로 기능하거나, ③ (법 그 자체를 성찰하며 때로는 검찰권이나 사법권 같은 공권력의 행위에 맞서서 이를 법 이념에 따라 평가·통제·지도하기보다는) 검사나 법관과 같은 사법관료 중심적 · 보수적 법조 문화를 차별적으로 조장하거나 이에 기생하려는 상징으로 전락했을 수 있다.

법원도 법무부도 법에 따라 통제·감시되고 지도되어야 할 권력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주관하는 채용 과정의 한 전형인 특정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숫자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이를 홍보해야 할 정도로 빈곤한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육 현실의 한 단면을 법학관에 내걸린 현수막을 통해서 거듭 확인하는 것 같아서, 그 구성원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씁쓸하다.

*출처 : https://www.lawschoo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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